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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문학

AI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 보존 연구 사례

  인류의 문화유산은 역사와 기억의 집약체이며, 세대를 넘어 전승되어야 할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전쟁, 환경적 재해, 기후변화, 도시화로 인한 개발 등 다양한 요인으로 문화유산이 소멸 위협에 놓여 있다. 특히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상당수는 물리적 훼손이나 관리체계 미비로 인해 고유한 가치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의 도입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다.

과거 문화유산 보존 연구는 주로 물리적 복원, 기록 보존, 전문 연구자에 의한 해석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시대가 도래하면서 3D 스캐닝, 머신러닝, 자연어처리(NLP), 딥러닝 기반 영상 인식 기술이 결합되어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기록·분석·재현하는 다양한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유산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역할을 넘어, 대중 참여형 플랫폼을 통해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등 확장된 의미에서의 보존을 가능케 한다. 본 글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 보존 연구 사례"를 주제로 다섯 가지 주요 사례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3D 복원과 가상현실, 이미지 인식과 고대 예술 복원, 자연어처리를 통한 고문헌 분석, 빅데이터 기반 문화유산 관리, 그리고 대중 참여형 AI 플랫폼을 통한 문화유산 보급의 측면에서 실제 연구 동향과 성과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AI와 문화유산 보존의 융합이 가지는 의미를 탐구한다.

 

3D 스캐닝과 AI 기반 복원

최근 디지털 인류학과 고고학에서는 AI와 3D 기술이 결합된 복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리아 팔미라 신전의 디지털 복원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유적은 물리적으로 원형을 되찾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연구자들은 잔존 파편과 사진 자료, 드론 촬영 영상을 딥러닝 기반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가상환경 속에서 신전의 원형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복원에 그치지 않고, 교육적·관광적 활용을 위한 가상현실(VR) 플랫폼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유럽의 박물관에서는 AI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손실된 조각상의 일부를 예측·재구성하는 실험도 이뤄졌다. 인간 전문가의 직관과 경험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복원 작업에 AI가 보완적 도구로 활용되면서 시간과 비용은 절감되고, 복원의 정확성 또한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AI가 단순히 기계적 재현을 넘어, 문화유산의 고유 미학과 역사적 맥락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정교한 학습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미지 인식을 통한 고대 예술 복원

AI는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하여 고대 예술품에 남아 있는 흔적을 판별하고, 손상된 부분을 복원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 벽화의 색채는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는데, 딥러닝 기반 이미지 보정 알고리즘은 과거의 기록 자료와 현재의 색채 패턴을 비교·학습하여 원래의 색감을 재현할 수 있다. 중국 둔황 막고굴의 벽화 보존 연구에서도 AI는 색감 복원과 손상 영역 예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많은 고화질 이미지를 학습한 AI는 인간이 식별하기 어려운 색의 잔존 흔적을 분석해 고유 채색 방식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단지 '흔적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원형의 감각적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그림의 구도나 양식을 학습한 AI는 손상된 부분의 양식을 예측·채워 넣을 수 있어 미술사적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이는 단순히 보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전시나 교육 콘텐츠 제작에도 활용되어 대중이 문화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자연어처리를 통한 고문헌 분석

언어학과 인공지능의 교차 지점에서는 고문헌 해석과 디지털 보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고문헌은 언어적 변화, 손실된 부분, 난해한 문체 등으로 인해 전문 연구자 외에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자연어처리(NLP) 기술은 OCR(광학 문자 인식)과 결합해 고대 문헌을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하고, 이후 문장 구조 분석, 의미망 탐색 등을 통해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석할 수 있다.예를 들어, 한국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대규모 역사 기록은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전통적 방법론으로는 전체적 맥락을 단기간에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AI 기반 자연어처리 시스템은 사건 간의 상관관계를 자동으로 추출하고,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나 라틴 문헌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AI가 언어적 패턴을 분석해 당시의 사고 구조와 사회적 의미체계를 복원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나아가 번역 AI와 결합하면서, 어문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연구자도 고문헌에 접근하기 쉬워졌으며, 다국적·다학제적 연구가 용이해지고 있다.

빅데이터와 AI 기반 문화유산 관리

문화유산 보존은 단순히 복원에 그치지 않고, 관리와 보호 차원의 연구도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AI가 빅데이터 분석과 결합하여 새로운 관리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습도·온도 변화를 고려한 건축물 손상 예측, 방문객 수에 따른 유적 마모도 분석 등이 대표적 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성당이나 고성의 미세 균열을 감지하기 위해 IoT 센서를 설치하고, 이 데이터들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보존 상태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존이 시급한 구역을 먼저 파악하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위성 영상과 GIS(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에 AI를 접목하여 유적지의 공간적 변화를 감시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는 불법 발굴, 도시 확장, 산림 훼손 등 외부 요인에 의한 문화유산 파괴를 조기에 감지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이처럼 AI는 문화유산의 관리 체계를 기존의 수동적·사후적 방식에서 능동적·예측적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대중 참여형 AI 플랫폼과 문화유산 보급

AI 기술은 전문가 중심의 연구를 넘어 대중과 문화유산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라우드소싱 플랫폼과 AI의 결합이다. 연구자들이 미처 확보하지 못한 이미지나 기록을 세계 각국의 이용자들이 업로드하면, AI는 이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분류하여 문화유산 복원을 보완한다. 이는 대중 참여와 학문적 성과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협업 체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Rekrei"라는 프로젝트는 전쟁으로 파괴된 유적이나 문화재를 온라인 참여자들이 사진 형태로 제공하면, AI가 이를 3D 모델로 재조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시민들이 문화유산 보존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AI는 교육 및 전시 분야에서도 혁신을 이끌고 있다. 증강현실(AR)과 결합한 가상 박물관, AI 가이드봇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체험은 문화유산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접근은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보존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AI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 보존 연구는 단순한 기록과 보관을 넘어, 복원·관리·해석·보급까지 문화유산의 전 생애 주기를 아우르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3D 복원과 가상현실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문화유산의 감각적 원형을 되살리고, 이미지 인식과 고문헌 분석은 학문적 진전을 촉진한다. 또 빅데이터 분석과 예측 모델링은 관리 효율을 높이며, 대중 참여형 AI 플랫폼은 보존의 사회적 확산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AI는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알고리즘의 편향, 데이터 부족, 문화적 맥락을 기계적으로 단순화할 위험성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AI는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강력한 도구임이 분명하며, 인간 연구자와의 협업을 통해 그 가치는 더욱 확장된다. 결국 AI와 문화유산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인류가 과거의 기억을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의 문화유산 보존은 ‘보관’에서 ‘재생산’, ‘참여’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가장 의미 있는 접점이라 할 수 있다.